이어달리기
어린 시절 누구나 했던 달리기. 그 중 ‘이어달리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독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 관심의 중심은 상대팀과의 경쟁에서의 긴장감도 있지만, ‘이어달리기’는 한 팀의 주자들끼리의 조합과 화합 안에서 펼쳐지는 긴장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는 보는 이의 입장보다 출발선에 있는 주자들에게 더 크게 밀려드는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 주자의 배턴을 떨어뜨리지 않고 잘 받아들고 달려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출발선에 서 있는 다음 주자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윤 판교’는 저희에게 ‘이어달리기’ 같은 프로젝트입니다. ‘윤 판교’는 이미 ‘윤 성수’와 ‘윤 한남’을 훌륭하게 진행한 ‘라보토리(Labotory)’라는 동시대 디자인 신(scene)에서 함께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배턴을 받아 달리게 되어 여느 프로젝트보다 더 큰 긴장감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윤’은 ‘라보토리’와 두 개의 공간을 진행하면서 향후 진행될 공간을 위해 핵심 컨셉을 계획해 두었고, 그 핵심 컨셉은 자연을 모티브로 한 ‘Balance’와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Minimal’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대변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두 키워드로 대변되는 핵심 컨셉을 공간에 잘 녹여 넣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에 주어진 가장 큰 미션이었습니다.
한국의 담
‘윤 판교’는 파사드 2면이 서로 평행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어진 현장은 양쪽의 파사드는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는 긴 직사각형 형태의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노출되는 면적이 넓어서 이점이 많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동선과 시선이 분산되어 브랜드가 의도한 스토리와 운영 방향을 고객에게 온전히 보여주기 어려운 단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간 구조의 측면에서는 이 단점을 극복하고,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는 동안 온전히 ‘윤’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저희가 직면한 또 다른 미션 중 하나였습니다.
저희는 ‘윤’의 핵심 컨셉과 공간이 가진 단점을 아우르는 방법의 실마리를 ‘한국의 담’에서 찾았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은 주변 경관을 온전히 집 안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기둥과 보를 이용해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 구조를 취했고, 이는 예로부터 한국 사람들이 자연을 대했던 마음가짐을 보여줍니다. 담은 이러한 가옥의 구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 또한 주어진 지형이나 자연 경관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또 담은 기능 측면에서 안과 밖의 경계의 역할도 하지만 담 너머의 경관을 다른 시각으로 보여주는 액자의 역할도 합니다. 또 담 밖에서 담 너머 안쪽, 혹은 그 반대로 서로 시선을 나누는 묘한 소통의 경계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윤 판교’에는 공간에 순응하듯 서로 다른 형태와 크기의 3개의 담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담을 통해 양면의 파사드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고객은 들어와 담 사이에 좁은 일을 걷고 담 너머의 또 다른 모습의 길을 걸으면서 안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객의 모습이 저희가 생각하는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윤’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러움
디자인을 풀어나가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실마리는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안경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안경은 늘 화려한 조명과 소재를 배경으로 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안경 홀로, 혹은 안경을 착용한 사람들은 그렇게 화려한 조명이나 배경에 놓일 일은 없습니다. 저희는 ‘윤’이 생각하는 안경이라는 일상의 제품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품의 순간적인 돋보임이 브랜드의 영속성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윤’이라는 브랜드, 그리고 그 안경은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놓여 있을 때 그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윤’은 베를린에서 2015년에 런칭했지만 우리나라에서 2020년에 런칭한 아직까지 신생 브랜드에가깝습니다. ‘윤’은 일상을 말하며 근래에 발생한 자극적이고 화려한 브랜드들과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이 보여주는 행보는 사람들의 마음과 감성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윤’은 브랜드의 철학을 한켜한켜 쌓아 가고 있으며 그 쌓인 시간의 두께만큼 그들의 진가는 더 두드러 질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봅니다. 그 쌓여진 층의 한 조각으로 참여할 수 있어 더 없이 기쁘며, 오랜 시간 쌓인 단단한 층처럼 오랫 동안 일상에 남는 브랜드와 그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Publication
Annual No.38
Monthly Design No.533
Monthly Design No.534
|Cooperation